
이인태 [삼성중공업 사원]
[전, 거제시의회 8대 시의원]
상생기금 2000억 원, 누구를 위한 기금인가?
거제시장 재선거에서 당선된 변광용 시장은 ‘2,000억 원 규모의 지역 상생 발전 기금’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역 경제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의지는 평가할 만하지만, 이 기금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떻게 조성되고 어디에 쓰일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오히려 시민과 노동자 사이에 크고 깊은 우려만 낳고 있다.
무엇보다 1,500억 원에 달하는 기업 출연금이 과연 실현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이 돈은 기업의 여유 자금이 아니다. 결국 조선소 노동자들이 땀 흘려 일한 결과에서 나오는 가치다.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자금을 공공의 이름으로 전용하려는 발상은, 그 자체로 권리 침해이자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민감한 사안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나 한화오션 노동조합과의 협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자산을 당사자 동의 없이 정책적 목적에 사용하겠다는 것은 상생이 아니라 강제이며, 협치가 아니라 독단이다. 지자체가 노동자의 몫을 내수 진작이나 공약 실현이라는 명분 아래 끌어다 쓰는 일이 과연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구체성 역시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 2,000억 원으로 발표된 기금은 어느새 1,500억 원으로 줄었고, 여기에 거제시 예산 100억 원을 보태겠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막대한 자금이 향후 5년간 어디에,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일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기금 조성이 먼저가 아니라, 사용 목적과 구조가 먼저’라는 행정의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만약 이 기금이 정말 노동자의 몫에서 나오는 자금이라면, 차라리 기업이 직접 사원들에게 거제사랑상품권 등의 방식으로 환원하여 실질적인 가계 지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그것이야말로 내수 진작이고, 기업과 노동자의 실질적인 상생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삼성중공업은 그간 거제시와 함께 정부지원금을 더한 공동복지기금을 6년 동안 90억 가까이 출연해 학자금, 상생문화활동비, 방한용품 등을 협력사 처우개선에 활용하고 있다. 조선재직자 희망공제사업에도 약 100억 원이 사용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기업이 낸 돈으로 자치단체장이 생색을 낸다는 인식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기업의 자금은 결국 노동자의 몫이다. 시민과 노동자 모두 기금의 규모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재원이 어디서 나오고,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삼성중공업 현장 노동자로서, 나는 이런 방식의 상생기금 조성에 단호히 반대한다. 진정한 상생은 급조된 계획이 아니라, 당사자 간의 동의와 합의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