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호황기, 다시는 치킨 게임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미래의 조선은 거제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
한국 조선업이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서고 있다.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으로 대표되는 한국 조선 3사는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수주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조선업의 역사에서 ‘호황’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다
과거 우리는 호황기마다 반복된 과도한 수주 경쟁, 저가 수주라는 이름의 치킨게임이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 똑똑히 경험해 왔다.
호황일수록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 경쟁이 아니라 한국 기업들끼리 벌이는 내부 소모전이다
카사블랑카 신조선소, 3사 동시 참전이 던지는 경고
최근 보도에 따르면 모로코 카사블랑카 신조선소 운영권 입찰에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가 모두 참여하며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 사업은 단순한 조선소 수주가 아니다
30년 장기 운영, 대규모 투자 기술 이전과 인력 양성을 포함한 국가 전략 프로젝트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끼리 가격과 조건을 깎는 경쟁에 나선다면 그 피해는 기업 내부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 전체와 노동 현장 지역 경제로 고스란히 확산될 수밖에 없다
호황기 치킨게임의 상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거 조선 호황기마다 반복된 치킨게임은 저가 수주와 출혈 경쟁을 낳았고 그 결과는 적자와 구조조정으로 되돌아왔다
그 부담은 조선소를 넘어 조선 기자재 업체 전반과 원·하청 현장 노동자들에게 전가됐다
단가 후려치기, 납기 압박, 고용 불안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호황이 산업 전체의 축복이 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가격 중심의 무분별한 경쟁이 산업 생태계를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MASGA 프로젝트와 해외 투자,
같은 오류를 반복해선 안 된다
카사블랑카 신조선소는 MASGA 프로젝트와 연계된 중장기 국가 전략 사업이다
이는 단순한 수주전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투자 능력과 책임을 묻는 경쟁이다
그러나 해외 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 공동화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성장도 전략도 아니다
조선 호황기의 이익이 해외로만 빠져나가고 국내 산업과 노동이 방치된다면
우리는 또다시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미래의 조선은 한국, 거제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수십 년간 거제에 뿌리를 내리며 성장해 온 기업이다
그 성장은 지역의 숙련 노동자와 수많은 기자재 업체 원·하청이 함께 버텨온 산업 생태계 위에서 가능했다
이제 조선 호황기에 양대 조선사는 거제에 대한 재투자로 답해야 한다
핵심 기자재 업체들을 거제로 유치하고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조선·기자재·MRO 산업이 집적된 전략 산업 거점을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직영 공정과 공용 설비를 확대하고,
원청과 하청(사외·물량팀) 간 임금·복지 격차 해소를 위한 협력사 처우 개선, 조건 없는 정년 연장, PI·PS 동일 지급 원칙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조선업의 경쟁력은 저가 외주가 아니라 안정된 고용과 숙련 인력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다
조선업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지역의 문제다
조선업은 단순한 민간 산업이 아니다
해양 주권, 에너지 전환, 수출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대한민국의 핵심 전략산업이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거제에서 성장한 기업이다
이제 그 책임 역시 거제에서 완성돼야 한다.
해외 투자 확대보다 앞서 거제에 대한 재투자가 우선돼야 한다
조선 호황기의 진짜 승부는 눈앞의 한 건 수주가 아니다.
앞으로 10년, 20년 한국 조선업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의 문제다
HD현대중공업은 HD현대미포와의 합병을 통해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도약하며, 2030년 매출 100조 원을 목표로 한 한국판 ‘조선 공룡’의 탄생을 예고했다
이제 한국 조선 3사가 과거의 치킨게임을 반복하지 않고, 산업과 노동자, 지역이 함께 살아남는 선택을 하길 기대한다.